허정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 등에 대한 상호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다시 인상하겠다고 전격 발표하면서 정치권이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의 원인으로 ‘한국 국회의 입법 미이행’을 직접 지목함에 따라, 여야는 사태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며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진=총리실제공)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 국회가 우리의 역사적인 무역 합의를 법으로 제정(enact)하지 않았다”며 “한국산 자동차, 목재, 의약품 등에 대한 관세를 다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국의 ‘대미투자특별법’ 심사 지연을 정조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계획된 일정에 따른 입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7일 “현재 5건의 법안이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회부되어 여야 협의 중”이라며 “연 200억 달러 이상의 재원 마련과 환율 대책 등 고려할 요소가 많아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소속 정태호 재경위 여당 간사 역시 “12월 조세 심의와 1월 인사청문회 등 국회 일정상 개별 법안을 심의할 여유가 없었을 뿐”이라며 “미국 측으로부터 입법 지연에 대한 실무적 불만을 전달받은 바도 없다”고 해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를 ‘이재명 정부의 무능과 독선이 초래한 결과’로 규정하며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재명 정부가 자화자찬했던 관세 합의가 얼마나 취약한 구조였는지 드러났다”며 “중대한 통상 합의를 체결하고도 국회 비준 절차를 외면해 온 대통령과 정부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성토했다.
국민의힘은 그간 한미 관세 협상이 국민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만큼, 단순 MOU가 아닌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한 ‘조약’ 형태로 처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정희용 사무총장은 “민주당과 정부가 비준이 필요 없다고 못 박으며 우리 당의 요구를 무시한 결과가 관세 폭탄으로 돌아왔다”고 비판했다.
최근 방미하고 돌아온 김민석 국무총리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박수영 의원은 “밴스 부통령과 핫라인을 구축했다더니 귀국 하루 만에 뒤통수를 맞은 것”이라며 정부의 정무적 판단력을 비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상대국 입법부를 직접 지목했다”며 “정부와 여당이 이 합의의 법적 성격(조약인지 MOU인지)조차 명확히 하지 않은 채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이 화근”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관세 인상 예고가 단순히 투자 특별법 지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플랫폼 규제)’과 ‘쿠팡 청문회’ 등 한국 국회의 반기업적 기류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쌓아온 불만이 관세라는 실력 행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여야는 비준 필요성 등 각론에서는 충돌하고 있지만, 관세 보복 현실화를 막기 위한 특별법 처리의 시급성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재정경제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대미투자특별법에 대한 본격적인 심사와 여야 합의 시도가 이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