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지난 20일 오후 대전 대덕구 문평동의 한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10시간여 만에 진화됐으나, 미처 대피하지 못한 근로자 등 11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뼈대만 남은 채 주저앉은 공장 현장과 희생자 가족들이 모인 대기소는 밤새 절규와 탄식으로 가득 찼다.

(사진=대전시제공)
21일 오전 찾아간 화재 현장은 화마가 휩쓸고 간 상흔이 역력했다.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공장 건물은 열기에 녹아내려 마치 구겨진 종이성냥갑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현장에는 매캐한 재 냄새가 진동했고, 소방대원들은 붕괴 위험 속에서도 실종자 수색에 박차를 가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전날 오후 1시 17분쯤 발생해 당일 밤 11시 48분쯤 완전히 꺼졌다. 하지만 불길이 워낙 빠르게 번지면서 인명 피해를 키웠다. 화재 당시 공장 내부에는 약 170명의 근로자가 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사망자들의 위치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21일 오후 1시 기준, 사망자 11명 중 9명이 공장 3층 옥내 주차장 인근 헬스장 창가 쪽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
남득우 대덕소방서장은 "사망자들이 창가 근처에 몰려 있었던 점으로 미뤄, 급격한 연소 확대로 대피로가 차단되자 창문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려다 화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화재 직후 일부 직원들이 2~3층 창틀에 매달려 구조를 요청하거나 아래로 뛰어내리는 긴박한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상자는 사망 11명, 부상 59명 등 총 70명이며, 소방대원 2명도 구조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 연락이 두절된 나머지 실종자 3명은 건물 붕괴 지역에 매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장 인근에 마련된 가족대기소는 한순간에 혈육을 잃거나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족들의 오열로 가득 찼다. '정OO씨 가족'이라고 적힌 쉘터 안에서는 한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은 다 뛰어내렸는데 너는 왜 안 뛰어내렸니"라며 아들의 이름을 부르짖어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충격으로 호흡 곤란을 일으킨 일부 가족은 현장에서 긴급 의료 조치를 받았으며, 재난심리회복 지원센터 관계자들이 투입되어 가족들의 심리적 안정을 돕고 있다. 경찰은 시신 훼손이 심한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을 위해 유가족을 대상으로 DNA 채취 동의를 구하는 등 절차를 진행 중이다.
정부는 대덕문화체육관에 '중앙합동재난피해자지원센터'를 설치하고 22개 관계 기관을 투입해 민원 접수 및 의료·심리 지원에 나섰다. 대전시와 대덕구 역시 피해 가족별로 1대 1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장례 절차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날 오전 1차 합동 감식에 착수했다. 경찰은 전담 수사팀을 꾸려 발화 원인뿐만 아니라 공장 측의 안전 관리 소홀 여부, 소방 시설 정상 작동 여부 등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한편 여야 지도부도 이날 오전 사고 현장을 방문해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철저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