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202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나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는 ‘K자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낡은 이분법적 논쟁에서 벗어나 달라진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성장 공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 나선 것은 취임 후 이번이 네 번째다. 이번 예산안은 이재명 정부가 기획부터 편성 전 과정을 주도한 첫 본예산으로, 올해 본예산 대비 12.8%(약 93조 원) 늘어난 820조 9000억 원 규모의 역대 최대 규모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나라 경제는 좋아졌는데 내 살림은 여전히 팍팍하다는 국민의 절박한 호소에 답해야 할 때”라며 “특정 지역과 계층, 소수 기업에 성장의 성과가 집중되는 소수의 성장이 아닌, 모든 지역과 국민이 기회와 과실을 고르게 누리는 ‘모두의 성장’으로 대전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거시경제 회복세에 대해 “상반기 3.8% 성장률을 기록했고 연간 수출 1조 달러 달성이 가시권에 진입했다”며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4만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6번째 ‘5040 클럽’ 진입이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투입된 공적자금 97조 2000억 원을 내년까지 전액 상환해 30년 만에 IMF 위기 극복을 완료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낭비 없는 효율적 집행’, ‘조세지출보다 재정지출 우선’, ‘지방 우대’ 등 3대 원칙에 따라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2100여 개 사업을 폐지하고 6476개 사업을 정비하는 등 총 107조 2000억 원 규모의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올해 -3.9%에서 내년 -0.1%로 대폭 개선하고 국가채무 비율도 48.3%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분야별로는 민생·복지, 미래 먹거리, 자주국방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사회보장급여를 기존 ‘신청주의’에서 ‘자동주의’로 전환하고 중위소득을 6.7% 인상한다. 청년 예산은 53.5% 늘어난 43조 3000억 원을 배정했으며 신혼부부 혼인지원금, 아이맞이지원금, 아동기본수당 등 ‘3종 패키지’를 추진한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분을 활용해 162조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하고,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에 21조 3000억 원을 투자한다. R&D 예산은 39조 5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국방 분야에서는 전작권 조기 환수와 핵추진 잠수함, KF-21 등 핵심 전력 확보를 위해 국방비를 8.2% 증액한 73조 3000억 원으로 책정했다.
다만 국회 통과 과정에서는 험로가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정부 예산안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불필요한 사업 지출 30조 원을 삭감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신설되는 미래대응기금의 여유자금 104조 원을 ‘국가채무 감축’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기금 신설로 지방교부세가 30조 원 넘게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서 심사 과정에서 여야 간 치열한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과 부수법안이 법정 처리 기한인 12월 2일까지 확정될 수 있도록 국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부탁드린다”며 “심의 과정에서 열린 자세로 경청하고 더 나은 대안은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