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비화폰(암호화 보안전화)을 이용해 군과 경찰 지휘부에 직접 통화한 사실이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계엄 해제를 막기 위한 군 특수부대와 경찰 기동대의 국회 진입 당시 윤 전 대통령이 이들을 지휘했다는 정황이 통화 기록 분석으로 확인된 것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단장 백동흠)은 9일 정례 브리핑에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후 군사령관, 경찰청장, 서울경찰청장 등과 비화폰으로 여러 차례 통화한 기록이 비화폰 서버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의 통화 대상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조지호 전 경찰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등이다. 이들은 계엄 직후 국회의원 체포 시도 및 국회 출입 통제에 관여한 혐의로 현재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그간 윤 전 대통령은 계엄 당시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으며, 군 지휘관들이 독자적으로 행동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비화폰 통화 내역이 구체적으로 확인되면서 윤 전 대통령의 책임론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경찰은 대통령경호처로부터 지난해 12월 3일부터 올해 1월 22일까지의 비화폰 서버 자료를 임의 제출받아 분석했으며, 윤 전 대통령의 비화폰 사용 정황 외에도 일부 사용기록 삭제 정황도 확인됐다. 경찰은 특히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민간인 신분임에도 비화폰을 사용했고, 이 정보가 12월 5일 삭제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비화폰 정보 삭제가 단순 보안 조치였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당시 통화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경찰은 윤 전 대통령에게 오는 12일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출석을 재차 통보했다. 이는 앞서 지난달 27일 1차 소환에 불응한 데 따른 조치다. 윤 전 대통령이 출석할 경우,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사례가 될 전망이다.
윤 전 대통령은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도록 경호처에 지시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와, 곽종근 등 사령관들의 비화폰 정보 삭제를 지시한 혐의(대통령경호법상 직권남용 교사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최근에는 김성훈 전 경호차장에게 통화기록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추가 입건되기도 했다.
경찰은 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계엄을 사전 모의한 혐의를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비화폰 기록 삭제 경위도 수사 중이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서 비화폰을 전달받은 뒤, 다시 반납하면서 초기화 작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경찰은 지난달 30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김영호 통일부 장관도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특히 내란 혐의로 수사 중인 한덕수 전 국무총리,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의 국무회의 발언과 CCTV 영상 간 불일치를 집중 조사했다.
비상계엄 관련 내란 혐의를 다루는 특검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경찰 수사가 윤 전 대통령의 직접 지휘 정황을 사실로 입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